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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2022-01-10 플래텀] “직원들 인생도 내 책임이다.”

관리자 2022-01-18 조회수 1,577

2022-01-10  |  Platum  |  원문바로가기


이범주 라피끄 대표 ⓒ 플래텀

영화와 창업은 둘 다 ‘종합예술’에 가깝다. 기존의 특성과 장점을 흡수하고 새로운 것을 융합해 결과를 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예술이 최고의 예술이 아니듯 영화나 창업도 성공할 확률은 낮다. 아무리 완벽한 대본(사업계획서)도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행 과정에서 실패가 수반되고 여러 여건과 요인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투입되는 자본, 흥행 여부에 따라 블록버스터(유니콘 기업)가 될 수도 있지만, 인디 규모에서 멈출 수도 있다. 다만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경험이 축적된 배우(창업자)는 남는다.

성공 스토리도 의미가 있겠지만, 보통은 실패 케이스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 평균이 실패인 스타트업에선 더더욱 그렇다. 성공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실패는 유사한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뷰티테크 스타트업이자 그린 바이오 기업 라피끄의 이범주 대표는 대기업에서 17년 간 커리어를 쌓은 자타공인 업계 전문가다. 사회생활 시작부터 창업을 생각했고, 충분히 경력이 쌓였다는 판단하에 5년 전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다. 회사만 설립하면 클라이언트가 몰릴 것 같았지만 이내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깨닫는다. 넘치는 자신감에 비해 준비가 소홀했다. 구체적인 창업 아이템, 수익모델도 없었다. 국내 창업 생태계와 지원 프로그램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 한 상황이어서 기회도 여러 번 놓쳤다. 시간은 흘러갔고 통장 잔고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회사를 접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몸서리치게 실감됐다. 이 대표는 창업하고 3년 6개월간 ‘스타트업 놀이’를 했다고 회고한다.

다행스러운 건 기술력이 건재하다는 것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실험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는 이 아이템을 바탕으로 회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들기로 한다. 결과적으로 2021년 ‘도전! K-스타트업 왕중왕전에서 우수상(국방부장관상) 수상, 농식품 창업 콘테스트 최우수상(국무총리상), 해양수산 창업 콘테스트 사업화 부문 대상, OB맥주 데모데이 우승 등 다수의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성과를 낸다. 아울러 롯데 엘캠프, IBK창공 등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거쳐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팁스(TIPS) 프로그램에도 선정됐고 국가대표 혁신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라피끄는 특허를 기반으로 기술을 견고히 해 투자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이는 지난해 15.5억 원 규모 프리 시리즈 A 투자유치로 이어진다. 올해는 40억 원 규모 시리즈 A 투자 유치가 예정되어 있다. 더 나아가 2025년에는 코스닥 상장을 노리는 중이다.

성공 스토리 클리셰로 가자면 이 대표가 나름 성공한 기업가가 됐다는 귀결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지만, 라피끄는 아직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 있다. 다만 희망은 이전보다 커졌다. 라피끄 이범주 대표의 2021년 12월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2021년 4월 디캠프 디데이 무대에 선 이범주 대표 / 사진=디캠프

한국콜마, 홈플러스, 서울대학교에서 커리어를 쌓은 뒤 창업을 시작했다. 흔치 않은 연구자 출신 창업자이다. 창업을 시작한 동기나 계기는 뭔가 (이 대표는 연구자 시절 처방개발 800여 건, 제품출시 300건, 특허 출원 약 40건, 논문 5편을 냈다.).

정해진 것만 따라가는 단조롭고 편한 삶이 나한테는 맞지 않았다. 목표를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17년간 연구자와 개발자 생활을 했지만, 사회 진출할 때부터 창업에 뜻이 있었다. 첫 직장 입사 면접에서 10년 후 포부를 묻길래 ’15년 후 남의 월급 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한국콜마에서 개발만 했는데, 창업을 하려면 전반적인 지식들이 필요하다 싶어서 홈플러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유통을 배웠다. 이어 서울대학교 벤처에서 3년 반 정도 소재 연구를 했다.

창업을 결심하고 제일 먼저 설득해야 하는 소비자가 가족이다. 회사를 옮기는 것과 창업을 한다는 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텐데.

회사를 그만두거나 옮기는 과정에선 특별한 이슈가 없었다. 그런데 회사에 퇴직원을 제출하고 창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가족들의 걱정이 많았다. 와이프는 하루 정도 고민한 뒤 응원한다고 해줬는데 부모님이 속앓이를 많이 하셨다. 그나마 최근에 여러 스타트업 콘테스트에서 입상을 하니 안심하시는 것 같다. 얼마 전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식사 도중 직접 제작한 상장과 상금을 주시더라. 그동안 받았던 그 어떤 상보다 기뻤던 수상이다.

2021년은 창업 이후 가장 주목 받은 해였다. 하지만 앞선 4년은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직간접적으로 창업을 체험했겠지만, 직접하는 건 달랐을 거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창업하겠다고 회사를 나왔을 때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굉장히 아찔하다. 구체적인 아이템이나 수익 모델 없이 창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업계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ODM 비즈니스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이다. 개발 능력과 업계 네트워크가 있으니 못 할 것이 없다고 자신만만했다. 회사를 알리는 활동도 게을렀다.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려야 뭐라도 연결될 텐데 실력만 믿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했다. 그렇게 창업 후 3개월을 그냥 흘려 보냈는데, 회사 자금이 줄어드는 속도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사의 밸런스가 엄청난 속도로 붕괴되고 있었다. 그때는 부가세 개념도 없었다. 고가의 기계나 물품, 재료를 구입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세금을 내라는 고지가 와서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1년쯤 후에는 회사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했다.

창업하고 초반 3년 6개월 간 J커브의 가장 밑에 있었다. 자금 조달은 어떻게 했나.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무서운 시간이었다. 창업한지 5년 됐는데, 2020년 8월에서야 IR(investor relations, 기업 홍보 활동)이란 걸 처음 했다. 그전까지 우리나라에 잘 조성된 창업 시스템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투자를 어떻게 받는지도 몰랐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이나 콘테스트가 있는지도 몰랐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창업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준비 없이, 사전 조사 없이 무작정 시작한 거였다. 그렇게 사업 초반 3년 6개월은 그냥 ‘스타트업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망하지 않은 건 정부 과제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들이 예창(예비창업자), 초장(초기창업자)을 먼저 시작하는데, 우리는 바로 정부 R&D 과제를 했다. 충분히 지식이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아울러 과제비로 개발이나 재료 구입을 하다보니 사업 확장을 등한시했다. R&D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공장을 인수하고 사람을 뽑으니 자금 소모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됐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2019년부터는 정부 과제도 선정되지 않았다. 기술보증기금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4억 원의 대출을 받았는데, 어느날 보니 800만 원 밖에 안 남은 게 보였다. 매달 고정비 3천만 원이 나갈 때였다.

3년 반 정도를 답도 없는 상황에 있었다. 회사와 가족을 책임지지 못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많이 힘들었다. 특히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괜히 이 회사에 와서 시간낭비, 인생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었다.

2021년 12월 롯데벤처스 엘캠프 8기 데모데이에서 발표 중인 이범주 대표 

지난해 다수의 창업 콘테스트나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에서 성과를 냈다. 

스타트업 놀이를 했다는 자책이 있었고,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회사 체계를 잡고 비즈니스 모델을 더 샤프하게 가다듬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를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봤다. 대외적으로 우리 기술을 인정받고 싶었고 회사를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창업 콘테스트라고 판단했다. 회사를 알리기 위해 내가 1년 정도 돌아다니는 인풋과 콘테스트 입상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봤다. 그래서 약간 집착에 가깝게 참가했다.

후회가 되서 그랬을 수도 있다. 창업하고 바로 초창, 예창 쫓아다니고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지원했더라면 더 빨리 성장했을 거라는 아쉬움이다. 내가 창업했을 때 나이가 만 39세였는데, 국가 지원이 있다는 걸 몰랐다. 모르고 놓친 많은 기회에 대한 후회 때문에 더 열심히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젝트 별로 분류를 해봤더니 작년에 73건의 프로젝트를 했고, 그 중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온 것이 36개 정도였다. 라피끄라는 이름으로 1등도 해서 큰 숙제를 마무리한 느낌이 든다.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게 ‘도전! K-스타트업’이다. 이 대회를 안 건 4년전, 2018년 이었다. 첫 결과는 ‘지역예선 발표평가 탈락’ 겨우 서류를 통과한 거였다. 2019년 결과는 ‘통합본선 탈락’ 그래도 지역예선 서류, 지역예선 발표, 통합예선 발표, 4단계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통합예선 탈락으로 고배를 마셨다. 결과적으로 2021년 왕중왕전에서 우수상(국방부장관상)을 수상하며 잘 마무리 했다.

디캠프 디데이, IBK 창공, 롯데 엘캠프, 씨랩, 미래식단 등 액셀레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사업을 발전시켰다. 2021년 1년 간 한 일이 그 앞 4년 동안 했던 일보다 많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던가.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 정말 잘했다. 다른 스타트업에게도 가능한 한 많이 해보라고 권한다. 각각 프로그램들이 개성이 있어서 바쁘긴 했지만 너무 좋았다.

IBK 창공을 가장 먼저 했는데, 프로그램이 너무 알찼다. 그때 급여체계를 만들고, 특허전략도 배웠다. 특히 창업자 가슴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었다. 디캠프 디데이를 참여하며 진짜 필요한 것, 특허에 대한 도움을 받았다. 롯데벤처스 엘캠프 프로그램에서는 비즈니스 확장의 단초를 얻었다. 롯데벤쳐스 이종훈 상무가 ‘라피끄에서 만든 원료는 그냥 먹어도 되겠다’라고 말했는데, 무릎을 탁 쳤다. 나는 화장품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식품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는 걸 그제서야 인식한 거다. 그래서 미래식단 프로그램에 참여해 샐러드 드레싱을 만드는 등 여러 시도를 해봤는데 잘 되더라. 한번 물꼬가 트이니까 걷잡을 수 없는 생각의 나래를 펼치게 됐다. 삼성전자 씨랩도 많이 도와줬다. 씨랩 출신 프리미엄도 있었다. 대구 씨랩을 했는데 신용보증재단에서 담보대출이 10억까지 나왔다. 우리가 처음 신보 대출 5억 받을 때 정말 어려웠던 것을 감안하면 큰 혜택이라 생각했다.

2021년 한 해에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데, 앞으로도 할건가. 

한해 동안 짧고 강하게 한 것으로 만족한다. 콘테스트와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얻으려고 한 것은 모두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젠 진짜 사업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대표는 40대 창업자다. 국내는 만 39세 이전 창업 지원이 많다. 통계를 보면 40세 이후 창업의 성공 확률이 높은데.

40대는 창업하기에 굉장히 적절한 나이라 생각한다. 경험이 있다 보니, 비즈니스 운영에 필요한 센서가 한 두 개 더 있다. 나도 30대 때는 템포 조절을 잘 못했다.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었고 안 좋게 얘기하면 감정 조절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흥분도 쉽게 하고 많이 부딪쳤다. 지금은 회사 대표 입장이기에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며 판단한다. 가슴에 있는 열정도 그것보다 우선할 순 없다. 나이 40은 불혹이라고 하잖나.

스타트업형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유형의 인재를 원하나.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인재들이 나한테는 베스트다. 시장에 능력 좋은 사람은 많지만 스타트업형 인재는 좀 다르다. 일단 스타트업 생태계를 알아야 한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일조하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어야 된다. 스타트업은 실패에 익숙한 조직이기에 지치지 않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나를 포함해 팀원이 네 명은 그런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들 하고 이야기하면 HR(Human Resource)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주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원 10명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조직에 파벌도 생기고 불만인 직원도 생긴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행복한 사장이다. 우리 팀원은 각자의 영역에서 오너십을 가지고 일한다. 굳이 나한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 처리를 한다. 소재 개발, 제형 개발, 재무 쪽은 그들이 알아서 하고 나는 공유만 받는다. 그 정도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팀원 모두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80-90%는 안다. 그래서인지 간지러운데는 알아서 긁어주는 편이다. 정말 고맙다.

라피끄는 직원 배려를 많이 해준다고 하던데.

배려를 안 한다고 해서 회사가 더 잘 돌아가는 건 아니다. 회사 대표는 당연히 회사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거고, 직원들도 스타트업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에 인생을 투자하고 있다. 그런 직원들의 인생도 대표인 내가 책임져야 한다.

스타트업에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건 비일비재하다. 

부부도 이혼하는 시대에 영원히 함께 하는 관계는 없을 거다. 부대표에게 ‘우리 빨리 성공하고 다음 번 창업은 공동창업자로 하자’라고 하고, 팀원에게는 ‘네가 창업할 때 내가 투자할게. 대신에 이 회사에 있는 동안 서로 재밌게 잘 지내보자’라고 한다. 인생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연쇄 창업이다. 액셀러레이터가 되는 것이 내 꿈 중 하나다. 능력이 된다면 LP(llimite Partner: 펀드출자자)를 할 수도 있을 거다. 어떤 식이든 창업 생태계에서 역할을 하고 싶고, 그것이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면 좋겠다.

라피끄 연화기술로 만든 화장품 샘플 / 사진=라피끄

사업 이야기를 해보자. 아이템이 독특하다. 식물을 직접 첨가하는 ‘소프테크’, 피부효능을 극대화하는 ‘소프트펌’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소프테크는 식물을 녹일 수 있는 기술이고, 소프트펌은 그 녹는 식물의 효능을 더 높이는 기술이다.

화장품 브랜드 사업을 하고 있는 지인이 꽃잎이 들어간 화장품 의뢰를 했다. 관련 제품을 론칭한 경험이 있어서 샘플을 만들어 줬는데 꽃잎을 문지르거나 비볐을 때도 녹일 수 있냐고 묻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는데 호기심이 생겨서 실험을 해봤다. 그러다 꽃잎을 녹이는 방법을 찾았다. 조사를 해보니 꽃잎을 녹이는 기술을 가진건 우리 밖에 없었다. 꽃잎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은 다수 있지만 온전히 녹이는 기술은 우리가 유일했던 거다. 그래서 이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식물 추출 과정에서 필요하거나 좋은 성분들이 버려지는 문제점도 해결했다. 우리 기술은 플랫폼이기에 확장이 무한하게 가능하다. 그리고 원료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모든 성분이 푸드 그레이드(foodgrade : 식품용)로 사용할 수 있다.

기자들은 세계 최초, 국내 최초와 같은 수식어를 들으면 의심하고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세계 최초 맞나. 앞선 사례는 없었나.

세계 최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식물 성분을 넣은 화장품은 있었지만, 식물을 녹여 만든 화장품은 없었다. 화장품 원료는 보통 액체이거나 가열을 통해서 액체화가 될 수 있다. 식물은 화장품에서 굉장히 많이 쓰이는 소재지만 고체이다 보니 추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액체로 만든다. 문제는 식물이 가지고 있는 효력의 10%도 못쓴다는 거다. 식물을 녹여 원료를 만드는 방식은 화장품 업계가 시도하기 힘들다.

식물을 녹여 만들면 효능이 높아지는데, 기존 화장품 업계에서는 왜 못했을까.

식물에서 성분을 추출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저렴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화장품 시장은 레드오션이다. 특히 국내 시장은 프로세스 별로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아서 독특한 제형을 만들거나 가격이 저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라피끄가 하는 방식은 굉장히 불편하고 어렵다. 식물을 제형 안에서 녹지 않게 만들어야 하고, 식물이 직접 들어가다 보니 제형의 세이프티(safety), 안정성(stability)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기술 장벽이 우리의 힘이다.

화장품을 넘어 식품, 건기식 등 진짜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확장할 계획인데.

식품은 대량으로 생산을 해야 하기에 직접 생산보다는 원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고려하고 있다. 우리기술을 이용해서 식품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을 생각해보니 국내에서는 롯데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행스럽게도 롯데벤처스 엘캠프 8기 기업에 선정되어 관련 이야기(라피끄는 롯데칠성음료와 식물 연화 기술을 이용한 음료 제품을 공동 개발 중이다)를 하고 있다. 아울러 오비맥주와도 맥주 부산물을 활용한 상품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 기술로 맥주 부산물을 100% 재활용, 단 하나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할거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아주 독특한 상품이 나올거라 본다.

지금과 미래의 수익모델은 무엇인가. 

지금은 의뢰를 받아 고객사 브랜드 화장품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B2B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 2022년에는 원료 세일즈 비즈니스를 B2B와 함께 화장품을 직접 생산하고 유통까지 하는 B2C로 진출하려고 한다. 자체 브랜드를 입혀서 판매하는 건데,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2021년 기준 국내외 특허 28건을 출원해 18건이 등록됐다. 그리고 올해 누적 40건을 출원할 계획이다. 특허는 라피끄에게 어떤 의미인가. 

특허는 우리 사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화장품 영역에서 라피끄만의 독자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유사하거나 능가하는 기술이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독자성을 잃게 된다. 그래서 특허에 굉장히 집착하고 있다. 2021년에는 8개 정도 출원을 했는데 올해는 10개 정도 예정되어 있다. 연 평균 10여개 정도의 신규 특허를 출원을 할 예정이다.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들었다. 

특허 출원만 하고 등록이 안 되어 있을 때 탈취 시도가 있었다. OEM으로 외주를 주면 제조 기술이 고스란히 노출되는데, 제조하던 회사가 우리 기술이 통상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허등록 감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소송했고 합의로 마무리 했다.

중기부 팁스 프로그램에도 선정됐다. 정부 공인 기술 인증을 받은거다. 어떤 것을 연구할 계획인가. 

맥주 부산물을 가지고 화장품을 만드는 사업으로 선정됐다. 맥주 부산물이 전혀 남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업사이클링(Zero Waste Upsycling)이 될거다. 이제까지 재현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실험실에서의 규모였기 때문에 대량생산, 원가를 최적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진행할 예정이다.

얼마 전 ‘그린워싱’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무늬만 친환경을 표방하는 행태를 지적한 건데, 그전에도 피부에 바르는 제품의 성능에 대한 의심이 많았다. 

시장이 가장 좋다고 평가될 때가 가장 위기인 순간이다. 클린뷰티를 표방하는 화장품 상당수가 제품이 아니라 케이스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화장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재활용 용기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거다. 위기 상황이 왔을 때 헤쳐나가려면 본질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효과 있다고 느끼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거다.

라피끄는 2021년 다수의 스타트업 콘테스트에서 수상한다. / 출처 : 이범주 대표 SNS

15.5억 원 규모 투자유치를 했다. 프리 A 라운드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리고 40억 원 규모 시리즈 A 라운드도 진행 중이다. 

회사가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거나, 연구를 못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 프리A 때 조금 많이 받았다. 올해는 우리가 5년 동안 쌓은 역량이 합쳐진 제품을 만들어 B2C를 한다. 시리즈 A는 그것을 제대로 키우는데 필요한 자금이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과제 등을 하면서 투자금은 세이브되고 있다. 올해에는 무난히 BEP를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돼서 시리즈A 보다는 시리즈B 때 조금 크게 받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투자유치를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거라 본다. 로드쇼(IR)을 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스타트업 투자유치 프로세스를 잘 몰랐는데, 웰컴 투 팁스라는 프로그램으로 투자사들과 많이 연결됐다. 강원&충청 행사를 할 때 참가해서 생각하지 못 한 1등을 했고 그날 40여 군데 VC(벤처캐피털)의 연락처를 받았다.

이어 VC 심사역 앞에게 사업 설명을 했는데, 엄청 지적 받았다. 당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디테일도 없었고, 예산 계획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때 만들었던 자료들은 부끄러워서 열어보고 싶지 않을 정도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IR을 나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가 VC라도 투자를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운이 좋게 상상벤처스 심사역이 그날 행사를 온라인으로 보고 연락이 왔다. ‘비즈니스 모델은 제로인데, 우리가 도와주면 되겠네’라고 하면서 투자를 결정해줬다. 오후 8시에 IR이 끝나고 다음날 5분 간 만났는데, 2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하더라. 이후 상상벤처스에서 인포뱅크를 소개해 줬는데, 서로 합이 잘 맞아서 빠르게 4억 원 투자가 결정됐다. 팁스 프로그램 선정도 인포뱅크가 주도해 줬다. 그다음에 신용보증재단에서 연락이 와서 10억 원의 추가 투자로 이어졌다. 그렇게 12월에 프리A를 마무리 했다. 급여일 전날에 투자금이 들어와서 안심한 기억이 난다.

이범주 대표와 그의 가족 / 사진=이범주 대표 SNS

창업을 하고 나서 후회한 적은 없나. 책임감이 많은 성격인데, 그것이 과도한 스트레스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후회를 많이 했다. 겉멋이 한참 들었을 때 후배들한테 “왜 남의 월급 받는 일을 하나. 창업하라”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 절대 하지 못한다. 창업 후 맞닥뜨리게 되는 고난의 시간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창업한 뒤 주 80시간에서100시간씩 영혼을 끌어 모아 일을 해야 했다. 초반 3년 6개월은 성공은 고사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회사 대표 역할을 하느라 가족을 잘 챙기지 못 했다. 가족들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긴 하는데 늘 미안했다. ‘내가 왜 이 창업을 했을까. 아직까진 업계에서 인정 받고 있는데, 접고 다시 돌아갈까. 어디를 가도 연봉 1-2억 정도는 받는데, 내가 왜 이렇게 가족과 직원들을 힘들게 하고 있을까.’등 온갖 생각을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은 회사가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기에 예전과 같은 위기는 없다. 하지만 늘 불안하다. 회사에 대한 책임감, 직원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여전히 무겁다. 아마 모든 스타트업 대표들이 다 그럴 거다.

창업자는 외롭다고 한다. 가족이나 팀원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도 있을 거다. 그런 고민은 어떻게 해결하나. 

성과가 나서 기쁘다가도 갑자기 현타가 오는 시점이 있다. 팀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20%는 있다. 그중에 10%는 스타트업 대표님들하고 얘기해서 좀 풀고, 나머지 10%는 혼자 삭힌다. 이 10%를 갈무리 할 줄 알아야 버틸 수 있다고 본다.

향후 사업 비전과 계획을 이야기 해달라. 장단기 마일스톤을 설명해 줘도 좋다. 

회사 이름이 ‘동반자’라는 의미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엣지와 기술로 소비자를 이롭게 만드는 것이 비전이다. 그리고 그걸 해낼 수 있는 팀이 라피끄라고 본다. 올해는 화장품 B2C를 하면서, B2B로 식품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2023년에는 시리즈B 라운드 투자유치와 공장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 그걸 기반으로 스마트팜도 운영해 볼 생각이다.

2025년에 기술 특례로 코스닥 상장을 하려고 한다. 빠르게 상장해서 도움을 준 투자자들, 그리고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고 싶다. 투자자들이 ‘라피끄에 투자해서 멀티플 나왔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그것을 굉장히 빠른 시점에 해줘야 되는 것이 스타트업 대표로서 내 의무다.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일하는 게 너무 신난다. 정말 일 많이 하고 싶다.

다만 아직까지 경영자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 회사의 시스템을 조금 더 정밀하게 바꾸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과제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 알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누군가가 우리 직원들에게 ‘어디서 일해?’라고 물어봤을 때, ‘라피끄에서 일해!’라고 하면 설명이 끝나는 인지도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많은 것을 이룬 것이기에 무척 행복할 거다. 그동안 내가 호언장담 했던 것, 말로 내뱉은 것 중에 조금 늦게 된 것은 있었지만 못 지킨 적은 없었다. 그런 회사가 되게 만들 거다. 기대해 달라.